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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형이번 포스팅에서는 세계 맥주 이야기, 덴마크 칼스베르크에 대해 알아봅니다.
덴마크 칼스베르크 :: 근대 양조 과학의 산실
덴마크 오덴세에 가면 작은 집들과 나무들이 동화처럼 서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때면 흡사 영화촬영장 같은 마을, 바로 안데르센의 고향입니다. 안데르센이 태어나서 배우가 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떠나기까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오덴세.
안데르센의 동화 가운데 가장 낭만 있는 이야기를 꼽는다면 단연 인어공주일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을 통해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영혼을 얻고자 했던 한 인어의 이야기는 디즈니에 의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로 각색되긴 했지만 대성공을 거두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인어공주를 다시금 불러내었습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작은 인어 동상을 보러 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입니다.칼스베르크 재단
작은 인어상이 코펜하겐 바닷가에 등장한 것은 1913년으로 칼 야콥센이 시에 기증한 거입니다. 크리스티안 야콥센,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에 이어 칼스베르크사의 3번째 주인인 칼은 일생을 사업보다도 예술을 사랑하고 후원하는 데 바쳤는데, 오늘날 메세나 운동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칼이 예술과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면 아버지 야콥은 평생을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바쳤습니다. 칼스베르크 연구소와 구(Gamle) 칼스베르크 재단의 설립은 양조과학은 물론 덴마크의 과학을 발전시킴으로써 칼스베르크와 조국 덴마크를 명예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함께 어울리기 힘든 것일까요? 칼과 아버지 야콥의 불화는 유명합니다. 사업보다 예술품의 취득에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는 칼을 야콥은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급기야 칼이 결별을 선언하고 아버지의 공장 옆에 자기 공장을 세우는 일이 벌어지면서 법정까지 가게 된 두 사람은 이후 6년간 송사를 벌입니다. 하지만 가족의 중재로 송사를 끝맺고 칼은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일종의 화해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을 간 남부 이탈리아에서 아버지 야콥은 숨을 거두게 됩니다.
과학의 발전에 공헌했던 아버지의 구 칼스베르크 재단과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했던 아들의 신(Ny) 칼스베르크 재단은 1906년 하나의 재단으로 통합됩니다. 그리고 이익금은 과학과 예술에 투자되고 있습니다. 특히, 맥주 양조에서 생기는 이익은 전적으로 공익사업에 투자되고 있는데, 아마도 맥주를 마시는 일이 문화와 과학에 기여하는 일과 동일한 경우는 칼스베르크가 유일할 것입니다.덴마크의 양조산업
덴마크의 양조산업은 수출이 전체 생산량의 1/3을 차지할 만큼 높은 편입니다. 반면 수입은 전체 소비량의 2%에 불과한데요, 현재 운영 중인 양조장은 25개로 적긴 하지만 인구가 500만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비율로는 영국과 비슷합니다. 맥주 소비자단체는 회원 수 9,000여명으로 유럽맥주소비자연합(EBCU) 회원국 가운데 영국의 CAMRA 다음으로 큽니다.
25개의 양조장 가운데 칼스베르크는 3개의 양조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재단을 통한 공익사업과는 달리 사업에 있어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일찍이 1970년대 초 강력한 경쟁사였던 투보르크와의 합병 이래 칼스베르크는 인수해서 폐쇄하는 인수합병 전략으로 많은 군소 경쟁자를 퇴출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칼스베르크가 덴마크 양조사업을 단순하게 만들었다고 혹평하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프립스, 노르웨이의 링그네스에도 칼스베르크의 양조장이 있습니다. 이들은 북구 맥주 시장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기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칼스베르크-프립스-링그네스의 축을 바탕으로 북구의 맥주 시장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기업 메세나 운동의 선구, 칼스베르크
하지만 북구 맥주 시장의 패자로서의 지위는 단순히 적자생존의 원칙이나 인수합병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은 바바리아 맥주(독일 뮌헨 슈파텐 양조장의 가브라엘 젤드마이어가 만든 최초의 상업용 라거, 짙은 갈색의 다크 라거를 가리킨다.)의 기능성과 이스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고 덴마크 최초로 상업용 라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뮌헨에서 코펜하겐까지 600여 마일에 이르는 긴 여정 동안 이스트를 보호하기 위해 매 정거장마다 이스트가 담긴 주석 통을 물로 식힌 일화로 유명합니다.
칼스베르크연구실의 에밀 한센은 이스트가 동질적인 물질이 아니라 다수의 계통(strain)으로 분해될 수 있다는 것과 계통들 가운데 아주 소수만이 양조에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에밀 한센의 연구는 맥주의 역사에서 기념비적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라거 맥주가 세계 상업 맥주의 지배적인 스타일이 되는 데 있어 에밀 한센, 넓게 보면 칼스베르크 연구소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칼스베르크가 북구의 패자가 된 것은 시장의 흐름을 보는 통찰력과 과학에 대한 열정을 근간으로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과학 발전에 공헌한 구 칼스베르크 재단과 칼스베르크 연구소, 오늘날 메세나의 선구라 할 수 있는 신 칼스베르크 재단 등은 이러한 이상과 정열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경영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야 기업윤리나 메세나 운동 등의 논의가 일부 큰 회사들을 중심으로 활발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야콥센 부자의 철학과 비전이 이미 한 세기를 앞서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예술과 과학을 살찌운다는 생각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실 것입니다.반응형'세계맥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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