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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형이번 포스팅에서는 세계 맥주 이야기, 영국 사람들이 즐기는 맥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맥주를 즐기는 장소 Pub
영국인들에게 펍(Pub, Public House)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일은 빼놓을 수 즐거움입니다. 독일에 이어 유럽에서 생산량과 소비량이 2위인 맥주 대국이기도 하지만 영국인들은 이웃한 아일랜드와 더불어 유독 펍에서 맥주를 즐기는 걸로 유명합니다. 사실 펍을 빼놓으면 영국인의 일상을 말할 수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매년 발행되는 Good Beer Guide 역시 펍에 대한 영국인의 각별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예입니다. 책자는 정말 '좋은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5000곳을 매년 소개하는데, 영국인이라면 신간이든 구간이든 한 권 정도는 갖고 있을 정도입니다. 영국의 각 지방과 지역별로 펍을 나누고 그곳에서 제조하는 맥주의 맛과 특징은 물론 숙박시설 등의 상세한 안내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Good Beer Guide는 단순히 괜찮은 술집을 소개하는 안내서가 아닙니다. 책자에서 말하는 '좋은 맥주'란 이 책의 발행자인 CAMRA(Campaign for Real Ale, 이하 캠페인)에 의하면 영국 전통 에일을 가리킵니다. 기술적으로는 캐스크 컨디션드 에일(Cask-conditioned ale, 이하 캐스크 에일)을 지칭합니다. 캐스크 에일은 요즘의 맥주와는 달리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공장을 떠나서 펍의 지하저장고(Cellar, 이하 셀러)의 캐스크 안에서 숙성됩니다. 이는 오랜 옛날부터 맥주를 만들어 온 방식에 충실한 것입니다.캐스크 에일 :: Real Ale
캐스크 에일은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영국 에일입니다. 일명 리얼 에일(Real ale)로 불리는데, 에일 안에 살아있는 효모와 잔당(Sugar)에 의해 2차 발효를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발효를 거치면서 캐스크 안에서 탄산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것도 특징입니다. 이러한 자연 탄산은 라거처럼 자극적이진 않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밋밋할 정도는 아닙니다.
캐스크에서 숙성된 에일은 당연히 드래프트(Draft)로 마시는데, 영국에서는 에일이든 라거든 맥주의 61% 이상을 드래프트로 마십니다. 그리고 모든 맥주의 67% 이상이 펍이나 클럽에서 소비되는데, 둘 다 아일랜드 다음으로 높은 편입니다.
모든 것을 쉽게, 빨리하는 요즘 풍조에 비추어 캐스크 에일은 분명히 구식이고, 무엇보다 캐스크 에일은 관리하기가 까다로운 걸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갈 뿐만 아니라 수공예와 같은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펍의 셀러를 관리하는 셀러 매니저는 사실 장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갑상어 부레로 만든 정제물을 투입해서 효모를 안정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서 혹 자연 탄산이 과다한 경우 통 주둥이에 구멍을 뚫고 이를 적절히 제거하는 일도 그의 몫입니다. 샐러 매니저는 각각의 캐스크에 담긴 에일을 모니터링하면서 투명도와 자연 탄산 그리고 무엇보다 맛의 변화를 세심히 살핍니다. 숙성이 덜 된 에일은 레몬처럼 신선하지만 약간 쓴 맛이 나는 반면, 숙성 단계를 지나친 에일은 식초처럼 거친 신맛을 냅니다. 결국 셀러 매니저의 정성과 기술이 펍의 맥주 맛을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관리는 까다롭고 힘든 반면 캐스크 에일의 일생은 짧은 편으로 숙성은 보통 1일~3일 정도 걸리고, 긴 경우 1주가량이 소요됩니다. 사실 장기간의 숙성은 펍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오묘한 맛의 조화를 얻기까지 2주~3주가 걸리는 아주 특수한 에일도 있습니다. 일단 개봉된 에일은 보통 2시간 이내에 소비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3일~4일이면 도저히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변질됩니다. 숙성이 완료된 에일은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만들지 않을뿐더러 에일을 따른 후 생기는 빈 공간에 산소가 들어가면서 맥주를 산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같은 셀러에서 숙성되었지만 어떤 캐스크도 맛이 같지 않다면 너무 심한 과장일까? 하지만 오늘의 파인트(Pint)와 내일의 파인트가 다르고 지난 금요일에 맛본 것과 오늘 월요일에 맛본 것이 다른 게 바로 영국 캐스크 에일입니다. 이는 마치 같은 와인이라도 하나의 빈티지(Vintage)와 다음 연도의 빈티지가 맛이 다른 이치와 같다고 할 수 있으니, 마시면서 미세한 차이를 식별하는 것도 영국 에일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캐스크 에일은 한때 고사 위기에 몰렸었는데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거대 양조업체의 급격한 성장과 근대화 열풍을 배경으로 새로운 맥주가 등장하는데, 일명 케그(Keg)로 불립니다. 케그 에일은 여과와 살균 처리를 거친 '깨끗한' 맥주였고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출하되어서 펍에서 숙성시킬 필요도 없었으며, 유통기한이 길어진 것은 물론입니다.
이때 일군의 애주가들이 캐스크 에일을 구하기 위한 소비자 운동에 나섰고, 1971년 CAMRA를 조직하고 활동을 전개하면서 전국적인 반향을 얻기 시작합니다. 전통 에일에 대한 작은 열정이 전국적인 소비자 운동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캠페인에선 일상적인 포럼이나 출판 사업 외에 거대 양조업체에 의한 지역 양조장의 폐쇄나 흡수합병이 공표될 때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중적 시위를 기획합니다. 영국 전역에서 각 지역 양조업자가 참가하는 Great Brirish Beer Festival 역시 캠페인이 주최하는데 매년 8월 다른 도시에서 열리며 1주에 걸쳐 영국 전역 각 지방의 캐스크 에일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에일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에겐 놓칠 수 없는 축제입니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오늘날 영국 에일의 총생산량 가운데 캐스크 에일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채 20%도 안 되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비율이 70년대 초 캠페인이 시작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점유율이 핵심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캠페인이 없었다면, 오늘날 캐스크 에일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만약 다음 세대에도 캐스크 에일이 지금의 점유율을 유지한다면 캠페인이 아주 예외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영국 에일을 마실 때 가장 맛있는 온도
영국의 전통 에일은 대부분 앞서 언급한 캐스크 형태로 제공되지만 아주 소수의 스페셜티가 병 형태로 나오기도 하는데, 캐스크 에일처럼 병 안에서 잔당과 살아있는 효모에 의해 2차 발효를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같은 제품이라도 캐스크보다 스파클이 강하고 맛이 꽤 다릅니다. 현재 국내에서 즐길 수 있는 병 형태의 영국 에일은 사실 아주 예외적인 형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국 에일을 마실 때의 한 가지 팁은 어림잡아 섭씨 13도 정도가 알맞다는 점입니다. 보통 13도는 에일이 숙성되는 셀러의 온도와 비슷한데 이는 숙성시의 온도로 마셔야 맥주의 참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며 라거를 아주 차게 마시는 것도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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